[나우누리][버터빵]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 (1308/37571)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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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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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 (1308/37571)

포럼마니아 1 7,295

#0

어느 한적한 거리. 아파트 골목 사이로 그가 걷는다.

눈길을 둘 데가 없는지 이리 저리 둘러보며 걷다가

바닥을 보고 땅을 한번 찬다.

구두에 튄 돌이 저 멀리로 날아간다.

오늘은 꽤나 바쁜 주말이 될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논현동으로 가서

잡지사에 맡긴 원고도 찾아와야 하고

바로 강남으로 와서

전에 애써주신 김과장님과 저녁을 같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구름이 약간 낀 파란 하늘이다.

바람이 서늘하게 머리를 날리고

가끔 눈에 내리쬐는 햇살이 아련하다.

그는 하늘을 한번 보고

피식 웃고는 계속 ?nbsp 煞?습?nbsp옮긴다.



#1

지하철 역 앞에는 비둘기들이 산다.

그들은 마치 참새인양 전기줄에 앉아있다.

언제부터 비둘기가 전깃줄 위에 앉게 되었는지는

역 앞에서 20년동안 양말을 파는 정씨 할머니도 모를 것이다.

그는 역 안으로 들어선다.

개찰구로 향하려다 어제 정액권이 다 떨어진 것이 생각나

매표소에서 정액권을 산다.

10000원을 내고 학생증을 보여주려다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학생인 양 착각하는 자신이 우스워

머쓱해하며 1000원을 더 내주고 표를 받는다.

표를 지갑에 넣고 개찰구로 향한다.

표를 넣고, 막대를 몸으로 밀고, 다시 표를 받아 지갑에 넣는다.

계단을 오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눈에는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가 보였다.



#2

그의 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그녀도 아무 생각 없이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예전과 그리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긴 생머리가 단발로 바뀌고

편한 구두만을 신던 그녀의 발에

높은 하이힐이 신겨져 있다는 것 밖에는.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왼손을 보았다.

결혼 반지인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nbsp 탔?nbsp왼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그녀도 이미 그의 왼손을 보았고

그의 넷째 손가락에 낀 반지도 보았다.

그녀가 준 바로 그 반지를.



#3

날씨가 우중충 한 것이 비가 올 것 같았다.

오늘도 수업을 빼먹고

후배랑 당구를 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또 군대에서 휴가나온 졸병들이랑 만나 술을 먹고는

오늘만은 일찍 들어가겠다는 각오가 깨진것에 분노하며

스스로 꽤나 기분나뻐하고 있던 그였다.

실은 기분 나쁠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어제 저녁

커피전문점 창가로 보이던 그녀는

어떤 모르는 남자와 앉아있었다.

그래. 그럴수?nbsp ?nbsp있지.

하지만 그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그녀는 어제 과외를 한다며 자신과 일찍 헤어졌다는 것이다.

캐물을 수도 없다. 괜히 속좁은 놈은 되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기분은 날씨만큼이나 우중충 했다.

군대를 마치고 처음 학교에 복학하는 날도

오늘처럼 날씨가 우중충 했다.

그리고 그날 그는 그녀를 만났다.

운명처럼.



#4

그는 1학년때 군대를 자원하여 갔기 때문에

복학을 했을 때도 과에는 남자가 별로 없었다.

워낙 여자가 많은 과이기도 했지만 그나마 있던 열몇명의 남자중

이제 그까지 합쳐 남은 사람은 서너명 뿐이었다.

그녀는 원래 다른 후배와 캠퍼스 커플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후배는 군대를 간지 1년이 넘었고

그녀도 슬슬 지쳐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우중충하던 그날

알던 몇명의 후배가 선배 돌아온 기념으로 파티를 해 준다며

어느 술집으로 끌고간 날

그는 술을 먹고 무작정 옆에 있던 여자 후배를 안았고

여자 후배는

들고있던 술을 그의 머리에 부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5

- 여보세요?

= 오빠구나. 나야.

- 마침 있었구나.

= 그냥 학교 끝나고 일찍 왔어. 오늘 수업 안들어왔더라.

- 그냥 후배랑 당구 쳤어.

= 그랬구나.

- 근데.. 나 물어볼 거 있는데..

= 뭐?

- 저기... 너 어제 과외는 잘 했니?

= 응... 애가 말을 안들어서 힘들었어.

- 그래?

= 응.

- 정말?

= ... 으응.

- 그럼 너 어제 커피전문점에서 과외했니?

= .......

- 나한테 왜 거짓말 했어?

= 미안해.

- 그 남자 누구야?

= ..... 군대 갔다가 어제 제대했대.

- 그... 애니?

= 응.

- 그랬구나. 그럼 그냥 만나러 간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했니?

= 미안해. 기분 나빠할까봐 그랬어.

- 난 네가 거짓말 한게 더 기분이 나쁜걸.

= 미안해. 이제 거짓말 다시 안할께.

- 정말이지? 이제 다시 거짓말 하면 안된다. 만나면 만나러 간다고 말을 하고
가. 알았지?

= 응. 오빠.

......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도

몇번의 거짓말을 했다.



#6

그 후배는 제대한 뒤

편입시험을 쳐서 다른 학교로 갔다고 했다.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후배의 여자를 빼았았다는 죄책감이

남모르게 가슴속에 남아있던 그로서는

그 후배를 매일 봐야 한다는 게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 이후로 그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달라짐에 당황한 그는

그 달라짐에 대해 추궁하?nbsp ?nbsp시작했고

그녀는 그가 그럴수록

더욱 더 달라져 갔다.

그래도 그나마 유지되던 그와 그녀의 끈은

그의 졸업식 날

그녀가 들고온 꽃다발 속에 들어있던 편지봉투에서

그가 준 반지가 떨어져 나오면서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그와 그녀는

이별했다.



#7

결혼한다는 소식은

다른 후배에게 전해 들었다.

상대는 그 후배라고 했다.

그리고 한달 후

그에게 청첩장이 날아왔다.

회사를 조퇴한 후

결혼식장 앞에까지 갔던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직도 자신의 왼손에 끼어진

그녀가 준 반지를 보고는

발걸음을 돌려

술집으로 향했다.



#8

그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그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아무말 없이

그녀의 곁을 지나쳤다.

등 뒤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았고

해야 할 말도 너무나 많았지만

그걸로 되었다.

몇년만에 만난 그녀를

아무말 없이 지나치게 되리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녀를 다시 본다는 것이.

계단을 다 올라 플랫홈에 도착한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손에 낀 반지를 몇번 돌려보더니

반지를 빼어 오른손에 쥐고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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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13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혹시 돈이 모자란건 아닐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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