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버터빵] 이. 별. 일. 기. (4) (2305/37582)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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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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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이. 별. 일. 기. (4) (2305/37582)

포럼마니아 1 11,041

- 11월 5일. 저번에 이어서 계속. -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참 생각도 많이도 바뀌었어.

갈까. 말까. 에이. 그냥 가자. 아냐. 뭐하러 가. 가지 말자. 그래도 가야지.
사나이 마음 먹었으면 가야지. 근데 가면 뭐 할 껀데. 그래도 가? 가야지.
에이. 확 가지 말까.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렸고, 그 역이 영경이가 사는 신림역이었어.

눈 감고도 찾아 갈 수 있는 길. 보라매 공원 입구쪽으로 나와서 밑으로 쭉
걸어내려가다 대교 빌딩 앞에서 해태 음식 백화점 골목을 지나 비디오 세상
앞에 있는 주공 아파트 3단지.. 그 길을 가는데.. 정신이 아득해 오더라구.
그리고 얼마나 떨리는지. 이렇게 가다가 만약 영경이랑 마주 치기라도
한다면.. 도저히 그냥 있을수가 없을 것 같았어. 이러다가 마주치면 아마 도망
갈 것 같았거든.

그래도 다행이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잘 지나쳤어. 그리고 나는 영경이가
사는 307동 앞의 벤치에 앉았지. 이 벤치는 위치가 오묘해서 왠만해서는
밖에서 잘 안보이거든. 그래.. 한때 여기서 영경이랑 같이 참 오래도 있었지.

그 때도 아마 이맘때였을꺼야. 둘이 만나고 난 다음 헤어지기 싫어서 내가
영경이 바래다 주면 영경이는 또 나 바래다 준다고 오고, 또 내가 가고, 또
영경이가 오고, 그렇게 몇번을 하다가 그냥 그 벤치에 앉았었지. 시간이
늦었거든. 밤 11시가 넘었었으니까. 그래도 둘이는 좋다고 서로 껴안고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영경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내 품 속으로 숨는 거야. 왜
그러냐구 그러니까.. 아빠가 지나간 것 같대. 헉. 영경이가 자기 아빠
무섭다는 소리를 많이 했거든. 이거 껴안고 있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그래서 당황한 우리는 설마 아닐꺼다.. 이 시간에 왜 나오시겠냐.. 아빠 가끔
이 시간에 산책 나오신다... 그럼 그냥 얼굴만 숨기자.. 그래서 서로 얼굴을
옷에 파묻고 있었지. 그리고 좀 있다가 영경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밖을
보는데, 없더래는 거야. 아버지랑 닮은 사람이 지나간 거였나봐. 그래서
우리는 웃으면서 다행이라고 하려는 그 순간에~!!

" 어흠. 흠. "

으아아아아악~~!!!

아버지가 벤치 뒤로 돌아서 오신거였어~!

나랑 영경이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아버지는 나를 쫙 째려보시는데.. 으흐흐..

" 아..아빠.. "

" 가자. 늦었다. "

" 저.. 안녕하세요? "

" 그래. 영경아. 가자. "

내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영경이를 끌고 가시는데.. 그 영경이의
눈빛이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어.

후.. 그래서 한 1주일동안 외출 금지 당해서 영경이를 못보긴 했지만, 그 때
갑자기 아버지를 만났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니까.

그런데 영경이는 왜 안오는거야. 집에 있는건가.

" 형~! 여기서 뭐해? "

" 으아아아아악~!!! "

" 응? "

" 아..너.. 영현이구나. 그래. "

" 왜 그렇게 놀라? "

" 아..아냐. "

" 누나 보러 왔어? "

" 아.. 아니. 그게.. "

영현이는 아직 모르나 보네. 영경이가 얘기 안했나 보구나.

" 누나 집에 왔니? "

" 아니. "

" 넌 어디 가는 길이야? "

" 지금 학원. 형은 누나 보러 온거 아냐? "

" 그래. 맞다. 누나 보러 왔다. "

" 내가 누나한테 말해줄까? "

" 응? 누나 어디있는데? "

" 누나 바람 쐰다고 공원으로 나갔어. "

" 그럼 좀 있다가 들어오겠네. "

" 응. "

" 그럼 그냥 기다릴께. 아. 영현아~!! "

" 왜? "

" 저기.. 오늘 이 형 온거 절대로 누나한테 얘기 하지 마. "

" 응? 형 누나 볼꺼 아냐? "

" 아무튼.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얘기 하지 말아주라. 알았지? "

" 뭐... 그래 그럼. "

" 그래. 고맙다. "

놀랐다. 정말 놀랐다... 갑자기 사람 놀래키는 건 이 집 전통인가.

아무튼, 공원에 갔다니까 좀 있으면 오겠구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밤도 늦은 밤으로 가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어떤
사람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 영경이인가.. 공원 간다더니 공원에서
3시간이나 있었던건가. 후..

오랜만에 보는 영경이의 모습은.. 많이 이뻐져 있었어. 그게 얼마나 열받는
일인지 모를꺼야. 왜 내가 사귈때보다 더 이쁜데. 왜 나랑 있을때는 화장도
안하더니 공원 가는데 화장을 하고 나가는데. 그런데.. 정말.. 왜 저렇게..
사랑스러운건데..

또 옛 생각이 막 나는 걸 가까스로 멈추고 영경이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고
있었어. 그런데 영경이 뒤에서 누군가 오더니, 영경이 어깨에 손을 딱 올리는
거야. 어~!! 저..저..저자식이.. 바로...그 혁진이란 놈?

" 다 왔어요. 갈께요. "

" 그래. 잘 가렴. "

"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오빠. "

" 자..잠깐만. "

" 네? "

어..어.. 분위기 묘한데.. 저거 뭐야..

" 저.. 오빠. 지금 들어가 볼께요. 잠깐 나온다고 해서 엄마가
걱정하실꺼에요. "

" 그래.. 그럼 잘 가렴. 잘 자구. "

" 네. 오빠, 그럼 다음에 뵈요. "

" 그래. "

오빠.. 그럼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보구나. 그런데 아까 그 분위기는...
으으으.. 키스 분위기였는데.. 내 앞에서 둘이 키스하는 걸 봤다면 난 아마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을지도 몰라. 나도 미쳤지. 이런걸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니..

그런데 저 혁진이라는 사람 .. 뭐.. 잘생겼네. 키도 크고. 그래서 영경이가 저
사람한테 간 건가. 좋겠다 너는. 영경이처럼 이쁜 아이 사랑도 받고. 그래.
행복해라 자식아.

나는 이제 가야겠다 생각했어. 영경이 얼굴도 봤고, 영경이는 전혀 이상없이
살고 있다는 것도 확인 했고,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
했고, 둘이서 잘 사귀고 있다는 것도 확인 했고.. 그리고.. 더 이뻐진 것도..
확인 했고.

이 길. 나와 영경이가 몇백번을 다녔던 이 길. 이젠 이 길을 저 혁진이라는
사람과 같이 걷겠지. 또 오장 육부가 뒤집어 지는 것 같아 생각을 멈추었다.
이젠 왠만큼 잊은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니 다시 처음이다. 괜히 왔다.

그래. 나는 영경이 앞에서 죄인이다. 그래서 얼굴도 못내밀고 왔다. 난 그저
영경이한테 잘 해주려던 것 뿐인데 그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내가 덜 사랑했던
걸까. 예전에 우린 서로 정말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좋아하는 척 한 것
뿐일까. 그냥 상황에 밀려 좋아하게 된 걸까. 사랑한 건 맞는 건가. 그냥 서로
착각하며 지냈던 걸까. 이게 사랑이라고.

집에 오는 길에 Ben E. King의 STAND BY ME 앨범과 데프레퍼드의 Two Steps
Behind 앨범을 샀다. 언제나 네 곁에 서있겠다는 가사와 너에게서 두 걸음
뒤에 서있겠다는 가사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난 이제 네 곁에 서 있지
못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의 자리니까. 네가 허락해 준다면.. 두 걸음 뒤에
서 있을께. 허락해 준다면.

그리고.. 10일만에..

울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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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18
하아..진짜 오빠 존나게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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