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우누리 』][샤다이] 감성의 재부팅 (10302/37774)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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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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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 나우누리 』][샤다이] 감성의 재부팅 (10302/37774)

포럼마니아 0 4,021

-비와 꿈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내게 있어 여자를 소개 받는 건 Ctrl + Alt + Delete 다.
내 삶의 활력과 웃음을 재부팅 시키는데 이것 이상 좋은 게 없다.
그간 나의 감성은 한 여자를 향한 짝사랑과 끈질긴 집착 때문에 다운되었었다.

"(멀리 안방에서) 정호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브레드핏의 한 측면과 거울 보듯 똑같아. 와서봐봐~~ "

난 날마다 그녀를 찾아가 시속 160km 로 심장을 던졌고,
그녀는 언제나 감정 없는 목소리로 '볼~~ ' 이라고 대답했다.

"정호야, 내 핸드폰 인사말이 브레드핏의 어떤 말투와 더빙하듯 똑같아,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 완전 브레드 핏이야~~ !!"
"쓰... 혼자서 실컨들어 -_-+ "

하지만 난 판정 소릴 못들은척 오랜 시간 반복해서 심장을 내던졌고,
그런 오랜 반복 속에 심장은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난 반폐인이 되며 다운되어 간 것이다.

"따르르릉~~ "

소개팅은 오후 1시로 잡았다.

"따르르릉~~ "

왜냐면 오전엔 가족과 약수터를 가기로 했기 때문에.

"따르르릉~~ "

젠장, 오랜만의 휴가라 소변까지 참으며 글 올리는데 뭐 이렇게 방해꾼이 많아-_-

"여보세요 ?"
"(굉장히 귀여운 목소리) 저어... 폰팅하실래요 ?"
"수희냐 -_-? "
"악, 어떻게 알았어 -_-;"
"내 흉내내는 애는 너뿐이 없어."
"하아.. 하아.. -_-;;"

이따 소개팅 늦지말고 나오라는 얘기와 파트너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녀의 공주병 가득한 일상적인 얘기들 이였다.

"요새 쫓아 다니는 복학생이 있는데 과제도 도와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재잘재잘~ "

기지배들과 통화하다보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하던 일 방해받는 것, 할 얘기 후 끊지 않고 수다떠는 것까진 참을 만한데,
가끔씩 짜증나는 공주병 증세를 꼭꼭! 보이기 때문에.

"근데 알고보니 그 복학생이 날 좋아했던 거시야, 깔깔깔~ "

왜 얘가 촉새공주였다는 걸 까먹고 있었을까 ?
하지만 계속 짜증낼 필요는 없다. 요렇게 맞대응 하면 되니까.
전화기 ①번 버튼을 길게 눌렀다.

"삐-------------------- ☆"
"까아악, 뭐야 이거 ?"
"경고..."
"경고라구 -_-?"
"또 공주병 증상보이면 다음엔 가차없이 ②번 누른다."
"우하.하.. -_-;;"

효과는 100 % 다. 한동안 게기질 않는다.
하지만 한참 잘나가는 20 대 인지라 공주병 증상은 쉽사리 꺽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복학생의 친구들까지 날 좋아했던 거시야, 어쩜좋니 ? 뽀하하하~ "
"(②번을 눌러준다) 삐--------------- ☆"
"까악~~~~~~~~~~~ "
"경고 two"
"휘청~ -_-;;;"
"한 번만 더 그러면 ③번 누른다.
③번 눌러서 경고 세번 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어 ?"
"(멈칫) 어떻게 되는데 -_-?"
"밥사야돼, 밥 !! 바라바라 밥을 사야한다구 !!"
"치잇, 그런게 어딧냐 ?"
"어딧긴어딧냐 여깃지,
그리고 나처럼 멋쥔 세라복 입은 해군이랑 밥먹으면 좋잖아~~ "
"에잇, 삐--------------------------- ☆"
"으아악~~~ -_-"
"정호도 경고 하나 !"
"하아.. 하아.. -_-;"

흠흠... 이렇게 사용하는거다-_-
소개팅은 오후 1시로 확정했다. 터진 심장재생을 위한 소개팅을...
전화후 글을 저장하고 화장실로 달렸다. 참았던 소변을 보러.
밀어내기를 짜릿하게 하며 오랜만의 화장실을 둘러보는데 못보던게 눈에 띄였다.
화장실 문짝에 깔끔하게 코팅해서 붙인 사자성어.

'多不有時'

다불유시. 가진 때가 많지 않다는 의미인가 ? 화장실 들어가면 빨리빨리 나오라는 ?
TV 광고에선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 라고도 하던데... 이거 누가 써붙였지 ?

"(마당에서) 정호야, 약수터 가자~ "
"지금 나가요~ "

궁금증을 접어두고 차에 탓다.
처음 가는 동네 약수터... 아아, 입대 전엔 엄마랑 자주 올랐었지.
군바리 되니 평상시 삶을 다 까먹는군. 끙... 요놈의 기억력.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엄마 : 정호~
샤다이: 예... ?
엄마 : 이번 휴가 땐 통신요금 좀 내. 어제 또 편지 왔는데 이번이 마지막 통보래.
샤다이: 우와, 이번이 마지막이면 앞으로 이 통보 안받아도 되는거야 ? 잘됐네~

"바캉~ ★☆★"

6 개월 만에 휴가나온 아들 얼굴을 물통으로 치다니... -_-;
피트병에 얻어터진 눈에 햇살이 눈부시다. 골때리는 통증.

형 : 조심해, 엄만 아까 나랑 다퉈서 신경이 날카로워.
샤다이: 엄마랑 다퉜어 ?
형 : 응, 아침부터 등이 결려서 안방에 엎드려 TV 보며 한 손으론 신문을 보고,
한 손으론 전화하고 틈틈히 거울도 보면서 또 발로는 밍키랑 싸움을 하는데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뒹굴댄다고 막 신경질을 내시잖아 그래서 다퉜어
너무 어거지 아니냐 ? 내가 뭘 아무것도 안해 ? 엄만 이해가 안돼. 그치 ?
샤다이: 대답 듣고 싶어 -_-?
형 : 음악이나 들어야지~ (이어폰을 귀에 꼽고 테크노 헤드뱅잉을)
아버지: 정준이 할 일 없으면 내 친구 딸이랑 선이나 한 번 볼래 ?
형 : 피식~ 제 나이에 무슨 선이예요 ? 노총각도 아닌데.
아버지: 여기 사진도 얻었다. 봐봐라~

나무에 기대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인데 귀여운 표정보단 큰 키가 눈에 띄였다.

샤다이: 우와, 이정도면 거의 쭉쭉급 소녀잖아~
형 : 얌마, 이 키가 뭐가 크다고 그러냐 ?
아버지: 정준인 그 처자 키가 작아보여 ?
형 : (사진을 보며) 예, 십센치도 안돼겠는데요. 다리는 기껏해야 사센치고.
쯧쯧, 요따만한 키로 험한 세상 살아가겠나~
아버지: 이 좌쉭이 죽을라구... -_-+

"퍽퍽퍽~ 퍼억-- ★☆★"
"아.아부지 등짝은 제발 -_-;;; 으알, 악! 우워어어어어어~~~~~~ "

어릴 땐 형이 혼나거나 맞으면 나도 옆에서 따라 울거나 슬퍼했는데,
왜 요즘엔 카타르시스만 느껴질까 흠흠-_-

엄마 : 니 형은 똑똑하다고 생각들다가도 가끔씩 너무 엉뚱해.

약수터로 가는 동안 아빠와 엄마는 형의 엉뚱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형이 유치원 다닐 적, 소꿉장난을 하길래 엄마가 참외 얼마내고 물었더니
형이 '2 개 3 천원이요' 라길래 깍아달라고 했더니 칼로 깍아준 것부터 시작해서-_-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의 얘기들을 이었다.
그중에 압권은 형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일이다.

"정준아, 학교 좋지 ? 앞으로 6 학년이 될 때까지 이곳을 다녀애 해."
"우와~ 디따 크다."
"여기서 13살 될 때까지 지내야 하니까 선생님 말씀 잘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해"
"13살이 될 때까지 ?"
"그래, 6학년이 될 때까지... 이제 입학식장에 들어가자."
"엄마 잠깐만..."
"왜 ?"
"나 13살 되면 꼭 데리러 와야해. 꼭이야... 잊어버리면 안돼 !!"

샤다이: 와하하하하~ 죽었써, 내 이 얘기. 형 친구들에게 모조리 꼬발를테다~ (^O^)
형 : 아- 동생 앞에서 이상한 얘기 하지마요. 이젠 기억도 안나는 일들을.. -_-;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억은 발효되지 않는가보다.
엄마는 하나를 더 말해주려 했는데 형의 발광과 약수터의 도착으로 얘기를 맺었다.

아버지: 자아 내려서 물통들고 올라가라~
샤다이: 어.. 차로 안가요 -_-?
아버지: 기름이 다 되서 주유소 갔다와야겠다. 마침 엄마 잡지 살 것도 있다하고.

근데 물통이 5 개 였다.

형 : 5 개 씩이나요 -_-?
아버지: 오냐, 5 개.
형 : 물을 다 채우면 100kg 가 넘을텐데.

간이 손수레도 없이 5 개라... 여기서 산정상까진 걸어서만 15분인데.
물론 우리에게 빈물통 5 개가 불가능한건 아니다. 매우 가능하다.
다만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다. 아빤 산만가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약수물 넣을 때 까지는 계신데 넣고나면 꼭 사라지는 것이다.
즉, 형과 내게 물통을 떠넘기고 도망가는거다 -_-;
중학교 때부터 상습적으로 그러셨는데 형과 내가 정말 한 두 번 당한게 아니다.
만약 이번에도 아빠가 출행랑한다면 형과 내가 100kg 를 집까지. 하하-_- 설마...

"뻐꾹뻐꾹~ "

샤다이: 이게 무슨 소리야 ?
형 : 뻐꾹이 소리 같은데, 이 산에 뻐꾹이가 있었나 ?
아버지: 그럼 올라가라, 아빤 간다~~

"부우우웅~~ "

비가 조금씩 내린다...
겨울비처럼 싸늘하다...
싸늘한 비는 싸늘하지 않은 비보다 훨씬 싸늘하다.
형편없이 훌륭한 부활의 노래 '비와 당신의 이야기' 를 들으며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비때문에 미끄러운 산길에 한숨을 탁, 뱉어 놓는다.

4 시간 후에 있을 소개팅. 내 피터진 심장은 다시 소생될 수 있을까 ?
이번 휴가를 감성의 재부팅으로만 채우려는 건 아이다.
내년에 복학후 데뷰할 단편영화와 학과 전공 마무리를 위해,
휴가 기간 동안 만날 선배들과 살 책,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으니까.
평소 하는 생각의 90 % 는 내가 구상한 시놉시스들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 작업은 언제 어디서나 진행되고, 지금은 군에서 계속 진행하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영상을 만들고 잠들기 직전에 play 시킨다.
그럼 하루종일 고민하며 만든 나만의 영상들을 꿈에서 볼 수 있다.
22 살 이후의 내 삶들은 이런 것들의 반복이다.
옛날에 칼 하나로 세상을 휩쓸겠다는 야망을 가진 젊은 장군이 있었다면,
이 시대엔 카메라 하나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내가 있다.
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성공 할거다. 난 절대적으로 그러하다.
그런데... 꿈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사랑하기에 너무 멀리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나 멀어졌다... 는 느낌이 자꾸만.............................
왠지 비가 숨겨진 마음을 하나씩 다 까발리는 것 같군.

약수터에 오르니 아빠 엄마는 먼저 와서 배드민턴을 치고 계셨다.
오늘은 우리 형제를 버리지 않을 듯하군. 후훗~
하지만 물을 다 채울 무렵이 되자 아빤 또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통을 차로 옮기지도 않았는데 엄마만 서둘리 태우고 시동을 거는 것이다.
순간 형과 난 고함을 지르며 미친듯이 달려가 차를 가로 막았다.

형 : (앞에서) 또 우리 둘한테만 떠넘기고 갈라구요 -_-?
아버지: 아니, 니 엄마 미장원에 데려다 주려고.
샤다이: (옆에서) 가면 안올꺼잖아요 -_-?
아버지: 하핫, 니들 되게 똑똑하구나~
샤다이: 우와, 아빠 자꾸 왜 그래요 ? 이번엔 물통이 5개라구요. 100kg 가 넘어요 !
아버지: 좋잖아, 근력도 생기고.
형 : 좋아요, 까짓꺼 외장하드 하나 사주면 물통 옮길께요.

"뻐꾹뻐꾹뻐꾹뻐꾹~~ "

아버지: (잠시 뻐꾹이 소리를 의식하다가) 외장하드라구 ? 까짓꺼 사주지.
형 : 우왓, 정말이예요 ?
샤다이: 그럼 난 추파춥쓰 한 통 !!
아버지: 하핫, 순진한 자식들... 농담이야~
형과나: 아 뭐예요, 농담을 하고~
아버지: 하지만 먼저 농담한건 너잖아.
형 : 이거 농담 아니예요-_-
아버지: 이잘난거 들고 옮기는데 무슨 하드디스크를 사주냐 ?
형 : 하지만 저흰 수년간 물통 날랐잖아요 !!
샤다이: 맞아, 아빤 한 번도 들고간 적이 없어 !!

"뻐꾹뻐꾹뻐꾹뻐꾹~~ "

아빤 뻐꾹이 소리에 다시 귀기울이다 말했다.

아버지: 어이쿠, 벌써 네 시네. 아빤 약속 있어서 이만 내려가봐야겠다.
형 : (아빠를 잡으며) 4 시라뇨 ? 무슨 4 시예요 ? 그리고 어딜 가세요 -_-?
샤다이: (시계를 가르키며) 지금 9 시 55 분이예요.
아버지: 무슨 소리야, 방금 뻐꾹이가 네 번 울었는데 !!

"와장창 쨍그랑- ★☆★"

형과나: 아.아부지 -_-;;;;;;;;;;;;
아버지: 그럼, 수고들 해~~
형 : 아부지 또 이런 식으로 떠넘기고 가면... 정호야, 아빠 팔 잡어 !
아버지: 놔라 인석아-_-
샤다이: 하지만 물통 5 개는 너무 많아요 -_-;;
아버지: 고얀 녀석들, 에비 4 시에 약속 있다니깐-_-
형과나: 아부지 -_-;;;

형과 난 100kg 를 들고 집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격렬한 몸부림을 쳤지만,
우리의 몸부림은 세탁기속의 몸부림처럼 아빠에게 아무런 동정도 얻지 못했다.
안돼겠다 싶어 2:1 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완력으로 차에 물통을 옮기려 했지만,
아빠는 자식이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약점을 이용해 치사하게
팔을 꺽어 넘어뜨리고 황급히 차를 몰아 떠났다. 눈깜짝할 사이였다.

"부우우웅~~ "

우리 형제는 약수터에서 10 여분간 머물렀다.
상황자체가 너무 괴이하고 유치한 것이 마치 처음부터 오랜만에 휴가 나온
귀엽고 명석한 둘째 아들을 놀래키기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참으로 무서운 부자지간 이였다-_-

샤다이: (착찹) 형, 이거... 어떻게 할꺼야 -_-?
형 : 글쎄 -_-;;
샤다이: 이거 들고 산 밑에까지 내려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
형 : (절벽 쪽을 내다보며) 한 6 초 정도 ?

썅, 이런 상황에 썰렁질 이라니.. 정말 보탬이 안돼-_-

산으로 퍼붓는 비를 다 맞고 내려가며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엔 정말 안놓치려 했는데, 뻐꾹이 얘기에 황당해 하다가 그만... -_-;;
집에 도착할동안만 열라리 쏟아진 소나기는 아빠를 돕는 조직원 같이 느껴졌다.
형은 집에 오자마자 젖은 채로 아빠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하드 디스크 사줘요~ !!"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엄마는 안계시고, 아빠는 죄지은 얼굴로 식탁에 엎드려 계시고.

차에서 벌어진 일이란다.
엄마는 미장원에 염색하러 가는 거였다.
그래서 잡지를 뒤적이다 어울리는 색을 찾고 아빠에게 의견을 구했다.

"나처럼 약간 주름이 있는 얼굴에 이 머리 색깔이 어울릴까요 ?"
"당신처럼 주름살이 있는 얼굴에 어울리는 머리색 ?"

아빠는 잡지 모델의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꾸긴 다음, 찬찬히 펼쳐보며 말했다.

"잘 어울리겠는걸~~ "

차안에 갑자기 정적이 흐르자 아빠는
장난이 너무 심했다고 느낀 나머지 한 번 더 약올렸다고 했다-_-
이번엔 펜으로 모델의 이마와 눈간에 주름살을 길게 그린 다음 다시 훑어보며,

"정말이야, 매우 어울려~~ "

사건은 이렇게 된 것이다 -_-;;;;;
그래서 소개팅도 못나간다고 수희에게 연락했다.
부모님께서 싸우는 판에 내 감성이고 뭐고는 저혀 다른 차원의 개그가 되버리니까.

"박정준,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용서받지 못하면,
내일 새벽부터 맨날 혼자 약숫물 뜨러 갈 줄 알어 !!"

형은 왜 내가 전화하냐며 혹시 아빠대신 혼나기를 바라는 거 아니냐고 펄쩍 뛰었다.
아빤 그건 맞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형 : 그럼 제가 용서를 받아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뭐예요 ? 어째서... ??
아버지: ...장남이니까 !
형 : 우왕, 그게 무슨 상관이예요 ? 미치고 점프하겠네 !!

형은 안한다고 연신 점프했지만, 아빠가 등짝을 서너대 때리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마의 핸드폰은 아무리 걸어도 받질 않았다.
형이 조금 있다가 다시 걸어보자했지만 아빠는 계속 걸라 그랬고
쉬지 않고 등짝을 때리며 독촉하자 형이 외쳤다.

형 : 아 등 좀 그만 때려요~ 저 내일 새벽부터 약수물 뜨러 가야한단말예요 !
아버지: 이 좌쉭이 진짜... -_-+

★☆★☆★
많이 맞았다. 등짝 터지도록.
그나저나 순종적인 엄마가 아빠에게 삐졌다는 건 생각 외로 큰 사건일텐데...

"따르르릉~~ "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야 ?"
"저기여... 폰팅하실래요 ?"
"-_-;;;; 김수희 죽을래~~ !!!"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왜 승질이야 ?"
"너가 먼저 화나게 했잖아 !!"
"칫, 너때매 소개팅 연기된거 얘기해 주려고 전화했는데.. 정호나뻐, 삐------- ☆"

젠장, 아빠 때매 나까지 꼬이는군 -_-;;;

엄마의 삐짐은 다음 날이 되서야 진전됐다.
아빠가 멋진 저녁을 차리고, 장미꽃과 고급 그릇 세트를 선물했기 때문에.
(더불어 외장하드와 춥파 1 박스도 식탁 위에 정다웁게 놓여져 있었다)

샤다이: 이야~ 아빠 돈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예요 ?
아버지: 걱정마, 모두 훔친거니까. 히죽~
샤다이: 헉 -_-;;;
엄마 : (화들짝) 뭐라구요 -_-?
아버지: 어휴, 농담이야 이 사람들아~ !! ..놀라기는...

아빤 말을 해도 참... -_-;;;

샤다이: 근데 왜 하나같이 비싼 밥그릇만 샀어요 ?
아버지: (귓속말로) 니가 아직 처세술이 약하구나.
샤다이: 처세술이요 -_-?
아버지: 꽃도 꽃이지만, 이렇게 비싼걸 사야 니 엄마가 내게 설거지를 안시킨다구.
샤다이: 휘청~ -_-;;
아버지: 너도 나중에 장가가면 써먹어, 이것도 삶의 지혜야.

하하-_- 여튼 엄마랑은 잘 해결돼서 다행이다.

샤다이: 우와, 찌개맛 쥑인다... 근데 포크찹 요리는 언제 해줄 거예요 ?
아버지: 음... 내일 모레 해줄께.
샤다이: 모레 말고 내일 해주면 안돼요 ?
전 아빠가 해주는 폭찹 먹으러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
아버지: 강원도라구 ? 그럼 꼴랑 아들 밥때문에 일본에서 날라온 사람은 뭐냐 ?
형 : 푸화하하하~ (^o^)
샤다이: 우씽...

아빤 또다른 형이다.

샤다이: 아참, 화장실 문짝에 붙은 한자 무슨 뜻이야 ?
형 : 한자 ?
샤다이: 多不有時 라고 사자 성어 쓰여있는거 있잖아.
형 : 아아, 다불유시 -_-;
샤다이: 응
형 : 잘 읽어봐봐~
샤다이: 가진 때가 많지 않다는 의미야 ? 화장실에 들어가면 빨리 나오라는... ?

형은 내 손을 잡고 화장실 문 앞으로 데려와서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했다.

형 : 多不有 = W(다불유)·時 = C(시)... 더불유시 = WC 이해돼 ?
샤다이: WC 를 多不有時 -_-?
형 : 응-_-
샤다이: 형이 쓴거야 -_-?
형 : 내가 한자 응용하는거 봤냐 ?
샤다이: 그럼 아빠 -_-?
형 : 아빤 천재야, 왠지 뜻도 맞아 떨어지고. 멋지잖아 多不有時 !!!

多不有時 라... -_-;;;;;;;
형은 아빠 앞에서 항상 정상인으로 보인다.

며칠후 소개팅을 나갔지만 감성의 재부팅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은 상대였는데 말이다.
초반엔 신나서 대화에 열을 올리며 그 집 고추장을 봄에 담그는지 가을에 담그는지,
고추는 일반초인지 태양초인지까지 새새히 대화를 하며 즐거워 했지만,
헤어지며 그녀에 대해 어떠한 기억도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이 지나자 누나의 유령이 다시 내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엔 아직 누나라는 여자가 꽉차있다.
쓰레기를 더이상 버리지 못할 정도로 꽉차있다.
이러다 또 다운 되는 건 아닐까 ? 후...
반복되는 부활의 음악이 '사랑해- 사랑해-' 를 외친다.
내게 있어서 무엇을 ? 누구를 사랑한다는거지 ?
그동안 내가 사랑할 사람이 없어 쏠로로 지냈던가 ?
비 내리는게 싫다.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비에 흠뻑 젖는다.

훗-
괜찮아....... 괜찮아, 나는 언제나 그래왔었어.
늘 이런 빌어먹을 다운증후군에 시달렸지. 또 이렇게 되었다는 점이 좀...
그 반복되는 지겨움 때문에 화내는 감정의 끝을 발로 툭툭 차고 있지만,
나는 괜찮을 수 있다고. 라고 다시 한 번 결론 짓는다.
여자를 멀리하면 정신의 여자를 가까이할 여유가 더 많아지겠지. 그러겠지.

사랑해-
사랑해-


* 다음 글부터는 제대해서 올릴께요. happy new year~
24 살. 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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